안동 차전놀이란?|수백 명이 거대한 ‘동채’를 메고 싸운 정월대보름 전통놀이
정월대보름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거대한 나무 구조물을 어깨에 메고 맞붙습니다.
구호에 맞춰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그 위에는 대장이 올라서서 자기편을 지휘합니다.
경북 안동에서 전승되어 온 ‘안동 차전놀이’입니다.
차전놀이는 ‘동채싸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단순히 힘센 사람이 이기는 놀이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동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협동과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대규모 집단놀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채는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정월대보름마다 이렇게 거대한 놀이를 했을까요?
1. 안동 차전놀이란?
안동 차전놀이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안동지역에서 행해졌던 전통 집단놀이입니다.
사람들이 동쪽과 서쪽 두 편으로 나뉘어 각각 거대한 ‘동채’를 메고 상대편과 승부를 겨룹니다.
그래서 차전놀이는 ‘동채싸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한두 사람이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한 편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대규모 대동놀이였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오늘날에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습니다.
2. ‘동채’는 도대체 무엇일까?
차전놀이 사진을 처음 보면 가장 궁금한 것이 사람들이 메고 있는 거대한 나무 구조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채’입니다.
동채는 긴 나무를 이용해 만들며 여러 사람이 아래에서 함께 메고 움직입니다.
동채 위에는 대장이 올라갑니다.
대장은 높은 곳에서 전체 상황을 살피면서 자기편 사람들에게 움직임을 지시합니다.
수백 명이 제각각 움직이면 거대한 동채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대장의 지휘와 참가자들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3. 어떻게 승부를 가렸을까?
차전놀이는 동쪽과 서쪽으로 편을 나눠 진행했습니다.
두 편의 동채가 가까워지면 참가자들은 상대편을 밀어내면서 자기편 동채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움직입니다.
이 과정에서 동채를 메는 사람뿐 아니라 앞에서 상대편의 움직임을 막거나 길을 만드는 사람 등 여러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승부의 핵심은 상대편 동채를 제압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승되는 방식에서는 상대편 동채가 땅에 닿도록 만들면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만 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는 협동이 중요합니다.
4. 왜 동쪽과 서쪽으로 편을 나눴을까?
안동 차전놀이는 전통적으로 동부와 서부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현재 살고 있는 동네만을 기준으로 편을 나눈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승 과정에서는 출생지를 기준으로 편을 나누기도 했기 때문에 같은 가족이라도 서로 다른 편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놀이가 시작되면 각 편은 자기편의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개인의 승부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놀이였던 것입니다.
5. 차전놀이는 왕건과 견훤의 전쟁에서 시작됐을까?
안동에는 차전놀이의 시작을 후삼국시대의 역사와 연결하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안동 일대에서 맞붙었던 고창전투와 관련된 전승입니다.
안동지역에서는 당시 지역 세력이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면서 차전놀이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습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차전놀이가 정확히 언제 처음 시작됐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왕건과 견훤의 전투에서 차전놀이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 안동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유래 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6. 정월대보름에 왜 이런 놀이를 했을까?
차전놀이는 전통적으로 정월대보름 무렵에 행해졌습니다.
정월대보름은 한 해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여러 세시풍속이 집중된 날이었습니다.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등 여러 공동체 놀이와 풍속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이루어졌습니다.
차전놀이 역시 많은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힘을 겨루면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승부는 치열했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큰 놀이판이었습니다.
7. 수백 명이 어떻게 하나의 동채를 움직였을까?
차전놀이가 특별한 이유는 규모에 있습니다.
거대한 동채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동시에 힘을 모아야 했습니다.
동채 위에서 전체를 지휘하는 대장이 있고, 동채를 직접 메는 사람과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 등 참가자들에게 각각 역할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 너무 빨리 움직이거나 방향이 맞지 않으면 전체 대열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결국 거대한 동채는 수많은 사람이 얼마나 잘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차전놀이는 힘겨루기인 동시에 협동과 단결을 보여주는 놀이였습니다.
8. 한때 차전놀이의 전승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안동 차전놀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채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 지역에서 차전놀이를 다시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전통적인 놀이 방식과 기억을 바탕으로 재현됐습니다.
이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을 통해 다시 널리 알려지면서 안동을 대표하는 전통놀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 전승이 끊겼던 전통놀이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9. 1969년 국가무형유산이 되었습니다
안동 차전놀이는 1969년 1월 7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건물이나 유물처럼 형태가 있는 문화유산과 달리 차전놀이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놀이 방법을 다음 세대에 전하면서 이어지는 문화유산입니다.
동채를 만드는 방법부터 편을 구성하는 방식, 대장의 지휘와 참가자들의 움직임, 승부를 겨루는 방법까지 모두 전승되어야 놀이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전놀이에서는 물건인 동채만 보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놀이를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과 공동체가 함께 있어야 전통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0. 거대한 동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
차전놀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동채입니다.
하지만 차전놀이의 진짜 주인공은 동채를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백 명이 같은 구호에 맞춰 힘을 모아야 거대한 동채 하나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월대보름마다 사람들이 모여 편을 나누고 승부를 겨뤘던 차전놀이는 단순한 힘겨루기를 넘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대동놀이였습니다.
그래서 안동 차전놀이를 볼 때는 누가 이겼는지만 보는 것보다 거대한 동채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 사람이 움직이는 놀이가 아니라 한 마을이 함께 움직이는 놀이.
그것이 안동 차전놀이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가장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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