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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읍성에 모인 29개의 비석, 300년의 비밀|버려졌던 돌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시간 약 11분

경주읍성의 복원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 특별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향일문 인근에 줄지어 서 있는 29기의 오래된 비석입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비석들에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경주를 거쳐 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비석은 1587년에 세워졌고, 비교적 늦게 만들어진 비석은 1903년에 건립됐습니다.

그 사이의 시간은 무려 316년입니다.

한때 돌담에 끼워지거나 마룻바닥 아래에 놓여 있던 비석들이 2025년 경주읍성으로 옮겨져 다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옛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비석을 세웠으며, 이 비석들은 왜 오랫동안 잊혀 있었을까요?

1. 경주읍성에 모인 29기의 오래된 비석

경주읍성 향일문 전경

경상북도 경주시 동문로에 자리한 경주읍성은 고려와 조선시대 경주의 행정과 생활 중심지였던 역사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복원된 동문인 향일문이 있습니다.

향일문을 지나 오른편으로 향하면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옛 비석 29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원래 한 장소에 세워졌던 것이 아닙니다.

경주와 주변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보존해 온 것입니다.

비석 가운데에는 지방관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와 송덕비, 청덕비, 영세불망비 등이 있습니다.

일부는 오랜 세월 방치되거나 다른 건축물의 재료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황성공원 호림정 뒤편에 모여 있다가 2025년 경주읍성 향일문 인근으로 이전되었습니다.

2. 가장 오래된 비석은 1587년 이부윤선정비

29기의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소개된 것은 이부윤선정비입니다.

이 비석은 1587년에 세워졌습니다.

주인공은 조선 선조 때 경주부윤을 지낸 이현배입니다.

이현배는 1585년 경주부윤으로 부임했지만 이듬해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경주를 떠난 뒤인 1587년,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이 비석은 현재 경주읍성 비석군에서 29번으로 소개됩니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이름이 400년 넘는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석을 통해 당시 지방관의 재임과 지역 사회의 기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3. 1903년 구연하 송덕비, 대한제국의 흔적

29기의 비석 중에는 대한제국 시기에 세워진 비석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위대 육군참령 구연하 송덕비입니다.

구연하는 1902년 경주 진위대에 부임했으며, 이듬해인 1903년 송덕비가 건립됐습니다.

진위대는 대한제국 시기 지방에 설치된 군대 조직입니다.

이 비석은 조선시대 지방관을 기리는 비석들과 달리 군인의 공적을 기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587년 이부윤선정비와 1903년 구연하 송덕비 사이에는 316년의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경주읍성의 비석 29기는 조선 선조 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이어지는 지역 역사의 흔적을 한자리에서 보여줍니다.

4. 선정비·송덕비·영세불망비는 무엇이 다를까요?

경주읍성의 비석을 이해하려면 비석에 새겨진 명칭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정비(善政碑)**는 지방관이 백성을 위해 좋은 정치를 펼쳤다고 여겨질 때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송덕비(頌德碑)**는 특정 인물의 덕행이나 공로를 칭송하기 위해 건립한 비석입니다.

**청덕비(淸德碑)**는 관리의 청렴한 덕행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공로나 은혜를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는 뜻을 새긴 비석입니다.

이러한 비석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어떤 일을 고맙게 여겼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자료이기도 합니다.

다만 모든 비석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감사만으로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관이 자신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도록 압박하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비문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5. 흉년의 백성을 도왔다는 김원성 청덕거사비

29기의 비석 가운데에는 당시 백성들의 생활과 직접 연결된 기록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윤 김원성 청덕거사비입니다.

이 비석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휼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구휼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식량이나 물자를 지원해 생활을 돕는 일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나 홍수, 흉년이 발생하면 백성들의 생활이 크게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관의 구휼 활동은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김원성의 비석은 당시 사람들이 지방관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비석에 새겨진 칭송의 내용과 실제 행정을 함께 연구한다면 당시 지역 사회의 모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6. 주민 부담을 줄였다는 이능섭 영세불망비

또 다른 비석에는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과 관련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부윤 이능섭 영세불망비입니다.

이 비석에는 재목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폐단과 주민들의 부담을 줄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관청이나 시설을 짓고 보수하기 위해 많은 목재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부담을 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능섭 영세불망비는 이러한 문제를 줄였다는 공적을 기리는 자료입니다.

오늘날에는 작은 비석 한 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주민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지방 행정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비석은 한 관리의 공적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전해줍니다.

7. 후손들이 140여 년 동안 돌본 이영장 상원비

경주읍성의 비석 가운데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관리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영장 상원비는 1631년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이후 1702년에는 후손이 경상도 좌병사로 부임하면서 비석을 옮겨 세웠습니다.

1772년에는 또 다른 후손이 경주부윤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중건했습니다.

처음 건립된 뒤 140여 년에 걸쳐 후손들이 비석을 관리한 것입니다.

이 사례는 조선시대에 조상의 이름과 공적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보여줍니다.

반면 후손이 지역에 남아 있지 않은 비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가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8. 돌담과 마루 밑에서 발견된 비석들

오늘날 경주읍성에 가지런히 세워진 비석들이 처음부터 잘 보존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비석은 오랜 세월 제자리를 잃고 방치됐습니다.

돌담을 쌓는 데 사용되거나 마룻바닥 아래에 놓인 사례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문이 새겨진 면을 뒤집어 건축 재료처럼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비석을 관리할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지방관은 자신의 고향이 아닌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기를 마치면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후손이 경주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석의 주인공과 그 공적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도로 확장과 도시 정비 과정에서 길가에 있던 비석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관리가 어려워진 비석들을 조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9. 황성공원에서 경주읍성으로, 2025년 이전

복원된 경주읍성 성벽

경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 가운데 상당수는 이후 황성공원 호림정 뒤편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호림정 뒤편은 그늘진 공간이어서 일반 방문객들이 비석을 쉽게 살펴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끼가 끼는 등 보존 환경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석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2025년 호림정에 있던 비석 29기가 경주읍성 향일문 인근으로 이전됐습니다.

이제 방문객들은 복원된 경주읍성의 성벽과 향일문을 둘러보면서 옛 비석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비석이 단순히 보관되는 것을 넘어 시민과 관광객들이 지역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다시 활용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0. 경주읍성 29기 비석,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향일문의 실제 건축 모습

29기의 비석은 경주읍성 향일문 인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일문을 통과한 뒤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비석들이 줄지어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방문 정보

항목내용
장소경주읍성 향일문 인근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동문로 31 일대
비석 수29기
건립 시기1587년부터 1903년까지
이전 시기2025년
이전 장소황성공원 호림정 뒤편 → 경주읍성
함께 볼 곳경주읍성 성벽, 향일문, 성곽 탐방로
관람경주읍성 야외 공간

경주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주의 행정과 생활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공간입니다.

복원된 성벽과 향일문을 살펴본 뒤 비석들을 함께 둘러보면 경주의 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석마다 이름과 건립 시기,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씩 비교하며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방법입니다.

11. 잊혀졌던 비석이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

경주읍성 야경

경주읍성의 비석 29기는 단순히 오래된 돌이 아닙니다.

어떤 비석에는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던 백성을 도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비석에는 주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반대로 비석을 세우는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 사회의 폐단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587년부터 1903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세워진 비석들은 이제 경주읍성에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혀 있던 돌들이 다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경주읍성의 29기 비석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과 백성들의 생활, 그리고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함께 보여주는 역사 자료입니다.

경주를 방문한다면 복원된 성벽뿐 아니라 그 아래에 조용히 서 있는 비석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수백 년 전 누군가가 남긴 이름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car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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